강남 란제리 전시회 드로잉을 보다 !!!!!!!!

강남 란제리

강남 란제리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화제의전시 《강남 란제리 드로잉》을 다녀왔다. 화제의 전시일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 10명을 한 전시에 모았을까 싶을 정도로 2017년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고 전시 자체도 좋다. 오랜만에강남 란제리 별점 5개다.

■ [강남 란제리컷]이라는 안도감과 [강남 란제리 드로잉]이라는 연약함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각자의 개인전/단체전으로 바쁜 강남 란제리실장 들을 한 자리에 모을수 있었던 것은 [B강남 란제리 드로잉]이라는 전시 제목이자 주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남 란제리컷], 완벽한 결과물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작가들에게 부담감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다른 전시보다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상태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어떤 A컷보다 좋은 전시를 만들어 냈다. 좋은 [작품]이라고 하지 않고 [강남 란제리 전시]라고 명시한 이유는 개별 강남 란제리 좋다기 보다, 그 강남 란제리들의 묶음과 합이 좋기 때문이다.

이건 [강남 란제리 드로잉]이라는 형식의 연약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드로잉으로된 작품은 습작같고 미완 상태같다. 그래서 한단위로 쪼개진 개별 작품만으로는 관람객의 만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렇게 한 작품으로서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채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다보면 하나의 관람으로서 가득히 채워지는 충만함이 있다. 예를 들어 3층 강남 란제리 작가의 작품에는 색이 거의 사용되지 않은 드로잉이 많다. 그러다 바로 옆에 전시된 강남 란제리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면 화려한 색채의 강렬함이 배로 다가온다. 이건 백현진 작가의 작품이 죽고 강남 란제리의 작품이 사는 우열의 개념이 아니다. 미완의 것들이 상호작용하여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같은 전시이다.

■ 강남 란제리 : 강한 부정은 긍정, 강한 거꾸로는 제자리 ?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다. 강한 강남 란제리  그러니깐 두번의 부정은 긍정과 같다는 말인데 3층에 전시된 [강남 란제리]의 <웃기네 길다 너무 >,(2017)가 그런 작품이다. 강한 거꾸로는 제자리인걸까?

이 작품의 첫번째 거꾸로는 글자 순서다. 강남 란제리 순이 아니라  이라 적혀있다. 두번째 거꾸로는 글자가 강남 란제리 거울에 반사된것 마냥 뒤집혀서 적혀있다. 이렇게 두번의 뒤틀림을 사용해도 관람객은 <강남 란제리 >로 잘 읽는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고 강한 거꾸로가 제자리라면, <강남 란제리이시시네>라고 누군가를 향해 내던진 비아냥은 다시 그것을 내뱉은 나에게 되돌아온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된다. <강남 란제리 시네>

‘웃’과 ‘기’사이에는 <염기 섞인 붉은 강남 란제리 >(2004)이라는 강남 란제리 작품 중 1점이 걸려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현재의 그를 논할때 시초로 잡는 작품이 <염기 섞인 붉은 강남 란제리>연작이기 때문이다. 30m 샤프로 그려진 이 작품은 많이 작았고 치밀했다. 작은 종이에 치밀하게 그리고 나면 땀에 젖은 종이의 짠내때문에 이름지어진 <연기 섞인 붉은 강남 란제리>이라는 작품은 개미굴같이 미로같았고 그안에는 아직도 길을 헤매고 있는 개미가 있을것 같았다.

■ 강남 란제리: 곧 버려질 강남 란제리
강남 란제리의 캔버스 회화 작품은 사실 너무 평범하다. 비슷한 컨셉의 다른 작가 작품을 올해에만 여러 작품 봤다. 그런데 강남 란제리의 작품이 특별해 지는 건, 바로 <강남 란제리 생각>(2017)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이 작품은 강남 란제리 작품이다. 바로 전시장 벽에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옆에 걸린 캔버스화 안에 그려진 것과 같은 돌덩이가 벽에 그려져 있다. 캔버스라는 2차원의 세계와 전시장 벽면 공간이라는 3차원의 세계가 만나고 충돌한다. 캔버스화와 벽화 사이를 오가는 이 작품은 <강남 란제리 산책-형태>,<걷는  강남 란제리 생각>라는 작품명처럼 관람객을 작품 안과 밖을 안달 나게 만든다.

강남 란제리 의 <T 강남 란제리 pbook> 작품 세로길이가 캔버스작품은 2.7m, 간판작품은 4m로 거대하다. 그 거대함은 수많은 이미지와 화려한 색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알맹이가 없다. 자세히 보면 무의미하게 그려지고 채워진 드로잉이다. 그렇게 채워진 이미지의 거대함과 눈부신 화려함은 보는 이를 압도시킨다. 화려하고 그럴듯해 보이면 됐다. 그게 작가가 주목하고자 했던 SNS에서의 이미지 소비 방식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강남 란제리의 내면 충동에 즉흥적으로 내지른것 같았던 검은 선들이 이번 전시에 공개된 치밀한 고민, 탐구의 결과물들이라는게 놀랍다.

 작품 일부. 이번 갤러리의 《강남 란제리 드로잉》에는 없는 강남 란제리의 작품이다. 이 둘의 전시를 참고 해서 보면 더 풍부하게 감상할수 있을 것이다.